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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기만하려 들면 축적된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

by Uzoob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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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하려 들면 축적된다

수많은 학파의 심리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열등감이라는 용어는 과연 올바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 환자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치료하고 싶어 하는 심리학자라면 단지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거듭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인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파의 심리학자들이 이 말을 채용해 그들 자신의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열등감을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올바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에게 그가 열등감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알리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열등감만을 더욱 심하게 증폭시킬 뿐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특별히 실망감을 느꼈던 특정 사건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정신 질환 환자들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신경증 환자들 역시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로 환자들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한 환자가 다른 환자와 구별되는 것은 그가 인생을 유익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어떤 종류의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자기의 노력이나 활동에서 느꼈던 한계에 의해서 구별된다.
그에게 “당신은 열등감을 앓고 있다”라고 알려서 용기를 가지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에게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지요, 당신은 머리가 아픈 겁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똑같이 무익한 일이다.
대부분의 신경증 환자에게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는지 물으면 그들은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단지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거듭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오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통해 그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 제스처가 심한 사람은 ‘나의 말은 만약에 강조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
우리는 가끔 2명의 어린아이가 키 재기를 할 때 이러한 행동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작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아이는 몸이 꼿꼿하게 경직되어 있다. 자기 키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려고 신경 쓰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아이에게 “네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니?” 라고 묻는다고 해서 아이가 그 사실을 인정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열등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순종적이고 조용하며 순한 눈을 한 비공격적인 인물인 것은 아니다.
열등감은 수많은 방법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나는 이를 동물원에 구경 간 3명의 아이들이 나타내는 각각의 반응으로 예증해 보일 수 있다.
그들 일행이 사자 우리 앞에 섰을 때 첫 번째 아이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집에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아이는 그곳에 선 채로 얼굴이 창백해지고 벌벌 떨면서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 라고 말한다. 세 번째 아이는 물끄러미 사자를 노려보며 “침을 뱉어 줄까?” 하고 어머니에게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실 세 아이 모두가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감정을 자기의 인생 방식과 일치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열등감이란 어느 정도는 우리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이다. 우리 모두는 항상 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용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감정을 단 하나의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며 만족스러운 수단에 의해서, 즉 상황을 개선함으로써 제거하려 할 것이다. 어떠한 인간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
뭔가 활동을 압박해 오는 긴장 속에 내던져져 있는 인간은 결국에는 자기의 열등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런 감정을 제거하려 든다.
그의 목표는 역시 ‘역경에 질 수 없다’는 것이지만, 장애물을 극복하는 대신에 자기최면이나 자아도취에 의해 뛰어난 사람으로 느끼려고 한다. 그가 시도하는 방법은 자신을 조금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열등감은 축적된다. 왜냐하면 열등감을 자아내는 상황은 변함없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의 원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그는 점점 깊게 기만 속으로 빠져들고 그의 모든 문제는 더욱 무겁게 압박해 온다.
우리가 그의 움직임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바라본다면 그의 움직임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한 움직임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계획됐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기를 약한 사람이라고 깨닫는다면 그는 자기가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옮겨 간다. 그리고 보다 강해지기 위해 충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눈에 한층 더 강하게 보일 수 있게끔 행동하는 데 그친다.
자신을 기만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부분적인 성공밖에 거둘 수가 없다. 만약 그가 직업에 관한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는 가정에서 폭군이 됨으로써 자신의 중요성을 재차 납득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마취를 걸 수도 있지만 열등감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앞의 경우와 같은 상황으로 인한 열등감은 그의 마음 밑바닥에 영속적인 흐름으로 남는다. 그때에야 우리는 진실로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

열등감이란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눈물이나 변명과 마찬가지로, 노여움 또한 열등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열등감은 늘 긴장을 자아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월감을 향해서 나아가는 보조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얻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우월만을 추구하게 되면 인생의 무익한 측면으로 향하여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배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자기의 활동 범위를 한정하려고 함으로써 성공을 향해 전진하기보다는 패배를 피하는 일에 몰두한다.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망설이면서 꼼짝도 하지 않거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마저도 보이게 된다.
그런 태도는 광장공포증인 경우에 매우 간단하게 나타난다. 이 증후는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눈에 익은 상황에만 관련되어 있어야 해. 인생은 위험으로 꽉 차 있으니까. 그런 위험을 만날 기회를 피해야만 해’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이 신경증적인 태도가 끊임없이 유지된다면 그 사람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침대에 웅크리고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만다.
위험으로부터 몸을 사리는 행동 중에서 가장 철저한 표현은 자살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포기하고, 자기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흔히 자살로써 우월감을 얻으려 한다는 말은 자살에 항상 비난이나 복수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살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가장 우울하며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당신은 나를 너무도 심할 정도로 잔혹하게 취급했다.”
신경증 환자는 모두 어느 정도 혹은 매우 상당한 정도까지 자기의 활동 영역이나 상황 전체에 대한 접촉을 한정해 버린다. 그는 육박해 오는 인생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거리를 둔 채로 자기가 지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상황 안에서 스스로를 폐쇄시켜 버린다.
그는 자기만을 위한 좁은 집을 짓고 문을 잠가 버리며, 바람도 햇살도 신선한 공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채 인생을 살아간다. 그가 상대를 협박으로 지배하려 할지 울음소리로 지배하려 할지는 훈련의 결과로 선택된다. 자기가 가장 잘 시험해 본 것, 자기의 목적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때때로 그가 한 가지 방법에 불만을 느껴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목표는 같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일이 아니라 우월감만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울음으로써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지력 없는 아이는 울보가 된다. 이 아이가 그대로 성인이 되면 우울증 환자가 된다. 눈물과 불평은 협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타인을 노예 상태로 몰아넣기 위한 지극히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부끄러움, 죄책감, 창피함 등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표면으로 드러나는 열등감이 발견된다. 결국 그들은 곧 자기의 약점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숨기는 이유는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목표 때문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일인자가 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허풍을 떨고 싶어 하는 아이는 자기의 우월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가 말이 아닌 행동을 조사해 보면, 그 아이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열등감을 가졌음을 이내 발견하고 만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실제로는 신경증 환자의 ‘좁은 집’의 특별한 예에 불과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의 문제에 직면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는 이 문제로부터 달아나기가 힘들 것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행동 영역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 한정한다면 그의 성적인 노력도 이런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는 불안감으로 인해서 오직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인다. 가까운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익숙한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희생자는 대개 어머니에 의해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인데, 그들은 자기의 소원이 반드시 성취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도록 훈련되어 왔다. 또 가정의 범위 바깥에서는 스스로 노력을 해야 남들의 호의나 애정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 본 경험도 없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싸여 있는 상태이다. 사랑의 대상에 있어서도 그들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하녀’를 구한다. 그 대상은 물론 그들의 어머니인 셈이다.
모든 아이들은 어느 정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어머니가 아이의 응석을 받아 주고 그 아이가 자기의 관심을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쏟고 있으면 그렇게 된다. 또한 아버지가 비교적 무관심하거나 냉담하다면 이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자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이러한 한정된 행동을 하는 모습은 모든 신경증 증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말을 더듬거리는 사람이 이야기할 때에는 대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도 사회 감정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동료들과 관계를 맺도록 강요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낮게 평가하며 시험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회 감정과 싸우게 되고, 결국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소외되는 아이들, 30세 정도까지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 결혼 문제로 고민해 온 사람들,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신경증 환자들, 낮에 하는 일에 진절머리를 내는 불면증 환자들은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다.
열등감은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일을 금지해 버린다. 자위, 조루, 성적 불능, 성도착 등의 증세들은 모두 ‘망설임’이라는 인생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성에게 다가가려 할 때 자기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왜 그렇게 불완전한 것을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우월감이라는 목표가 곧 떠오른다.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등감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설명했다.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이다. 예컨대 과학도 사람들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미래를 예견할 필요성을 느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의 생활을 개선하여 우주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우주를 보다 잘 통제하기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이다. 사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인간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까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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