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있다고? unconsciousness / 상담과 심리치료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정신분석을 창안한 것은 맞지만, 무의식이라는 개념까지 창안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은 힌두의 고대 문서에도 등장한다. 현대적 의미의 무의식은 18세기 독일의 철학자들이 제안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무의식은 이성과 합리성을 중요시하던 계몽주의자들에게 크게 주목 받지 못하다가 프로이트로 인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사변적 고찰을 주로 하는 철학자들과 달리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을 확신했던 의사의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었다. 프로이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을 하나의 철학적인 가정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한 영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형학적 모형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식이 아니라 이와 반대인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아니, 오히려 우리의 마음에서는 의식보다 무의식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의식으로 올라오려 하고, 의식은 이를 방어(방어 기제) 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견제하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마치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여러 힘들의 균형과 견제를 통해 유지하고 있기에 이를 역동 dynamic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우리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을 지형학적 모형 topographical model이라고 한다. 지형학적 모형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이 전의식 preconsciousness이다. 전의식이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잠깐의 노력으로 쉽게 의식화시킬 수 있는 기억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전의식을 무의식의 일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 전의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지형학적 모형은 종종 바다에 떠 있는 빙산으로 표현된다. 물 위로 나온 부분은 적지만 그 아래에는 엄청난 크기의 빙산이 있듯이 우리가 아는 의식은 마음의 일부분일 뿐이다. 정신분석 입장에서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종종 타이타닉호를 예로 든다. 1912년에 타이타닉호가 물 위의 빙산만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 1,5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북대서양으로 가라앉았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 마음의 무의식을 무시하면 그 결과는 끔찍할 수 있다고 말이다.
왜 무의식을 인식하고 그것을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할까? 또한 의식이 무의식을 견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증과 정신증을 치료하면서 무의식의 내용이 성 sex, 공격성 aggression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생존에 필수적인 성과 공격성의 추동을 가지고 있으나 이는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 속에서 사람들은 추동을 억압해 무의식을 형성한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형성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심리성적 발달을 꼽았다. 이 시기의 아이는 이성 부모에 대한 성적 추동과 동성 부모에 대한 공격적 추동을 강하게 경험하지만 이는 근친상간과 근친살해라는 금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마음의 저편으로 던져 넣는다고 했다.
의식화되려는 무의식
무의식은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으로 올라오려 한다. 이때 의식이 무의식을 잘 방어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것에 문제가 생겨서 무의식이 의식의 영역으로 올라오면 마음은 또 다른 기제를 발동시켜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무의식을 정신장애(이상심리학)의 증상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주로 치료했던 히스테리(신체 증상) 환자들은 생물학적인 이상이 없음에도 감각 기관의 이상이나 마비를 호소하던 사람들이었다. 프로이트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이 증상이 무의식의 의식화를 막기 위한 한 방법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오랜 작업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무의식을 직면했을 때 정화를 경험하면서 증상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식으로 침범해 들어온 무의식이 표출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실수 행위와 꿈을 들 수 있다. 실수 행위부터 살펴보면,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에서의 정신병리학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에서 모든 실수 행위에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착오나 실수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잘 분석해 보면 무의식적인 욕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식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수면 중에 무의식은 꿈이라는 방법을 통해 의식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때에도 무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꿈 작업 dream work이라는 여러 차례의 왜곡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만큼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에는 매우 위협적임을 알 있다. 꿈 작업이란 무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잠재몽 latent dream을 의식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인 현재몽 manifest dream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꿈은 잠재몽이 아닌 현재몽이다. 따라서 진짜 꿈인 잠재몽을 알기 위해서는 꿈의 해석과 분석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저술 중 가장 유명한 『꿈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의 주된 내용이다.
무의식의 의식화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치료의 목적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하는 이유는 성과 공격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 사용하고 다룰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의식화를 위해 먼저 무의식에 접근해야 하고, 그다음은 의식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 처음에는 최면을 사용했으나 그 한계성 때문에 1896년부터는 최면 대신 자유 연상을 사용했다. 꿈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 dreams are the royal road to the unconscious’라고 말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무의식에 접근하고, 그것을 의식화하는 정신분석의 치료과정은 내담자들에게 고통스럽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면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던져 넣었겠는가! 그래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내담자들에게는 무의식 때문에 생겨난 고통스러운 정신장애의 증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막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저항이다. 따라서 정신분석가는 이러한 저항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다루어야 무의식의 의식화를 잘 진행시킬 수 있다.
구조 모형
저항이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에 주춧돌 역할을 했다. 프로이트는 처음에 저항을 무의식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무의식의 의식화를 막기 위해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증상처럼, 저항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다양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상당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저항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쉽게 의식화할 수 있는 기억(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프로이트는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마음에 대한 새로운 모형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구조 모형 structural model이다.
구조 모형은 자아 ego, 원초아 id, 초자아 superego라는 심리적인 구조물을 가정한다. 쾌락을 추구하는 원초아는 성과 공격성의 추동을 일으켜서 자아에게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자아는 막무가내로 욕구를 충족하라는 원초아의 요청에 언제나 호의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사회적 규범이나 자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아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초자아는 자아에게 사회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자아는 이 두 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여러 갈등에 직면한다. 구조 모형도 지형학적 모형처럼 역동을 가정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마음의 구조가 심리성적 발달 단계를 따라 형성된다고 했다.
프로이트의 새로운 모형이 이전의 지형학적 모형을 폐기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형학적 모형은 정신분석에서 여전히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으며, 프로이트는 두 모형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어느 강의에서 프로이트는 원초아는 온전히 무의식의 영역에 있으나 자아와 초자아는 무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의식의 영역에 모두 걸쳐 있다고 설명했다.
지형학적 모형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방어하기 위해 정신장애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면, 구조 모형에서는 자아가 원초아의 위협에서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정신장애의 증상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또한 치료 목적도 지형학적 모형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하지만 구조 모형에서는 자아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원초아를 잘 다루도록 하는 것, 즉 원초아를 자아로 만드는 것이라 한다.
다양한 관점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과 욕구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이었지만, 그의 동료였다가 후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가 된 융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물론 융도 개인 무의식을 마음의 영역으로 설정했지만 이보다는 집단 무의식을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이 과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에게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요한 이유는 무의식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측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 행동주의와 반증가능성을 핵심으로 하는 현대 과학심리학의 방법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때 인지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을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 되었다. 역하 자극을 제시하거나 우리가 의도적으로 지각하지 못한 대상이라도 자주 노출될 경우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암묵 기억의 발견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의 과학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광고가 사람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얼마못가 폐기되었다. 인지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점에서 두 분야의 무의식이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근본적인 가정이 다르다. 다시 말해 인지심리학은 정보처리, 정신분석은 억압된 욕구라는 점에서 무의식을 바라보고 있다. 이후로 인지심리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정보가 처리되는 의식의 수준을 명명하기 위해 무의식 대신 잠재의식 subconsciousnes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