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심리학의 이해
이 절에서는 범죄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범죄심리학의 정의와 발달과정을 살펴보겠다. 특히, 역사적 배경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사상은 초기 범죄심리학의 출현부터 현대의 범죄심리학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범죄심리학의 정의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은 범죄 특히, 범죄인의 심리적 측면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Howitt, 2002). 즉, 범죄행동의 심리학적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심리학이 인간의 행동과 정신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범죄심리학은 범죄행동의 심리학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국내의 형사정책 서적들과 외국의 범죄학 서적들은 범죄심리학 관련 범죄원인론만 일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심리학은 범죄원인론 외에도 범죄수사, 판결과정, 범죄예측, 교정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되어 연구 및 응용되고 있다. 협의의 범죄심리학은 범죄의 원인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이지만, 광의의 범죄심리학은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걸쳐 범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심리학의 영역이라고 하겠다.
외국에서도 범죄심리학이 애초부터 독자적 학문분야를 구축한 것은 아니다. 범죄심리학은 범죄학의 한 분야로 범죄사회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수행해 왔다. 하지만 법 적용 시 심리학의 활용도가 급증하면서 이 영역은 최근 들어 심리학자들의 고유한 연구 영역이 되고 있다. 범죄심리학과 밀접한 분야로 법정심리학, 법심리학, 수사심리학 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법정에서 나아가 사법제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범죄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범죄심리학은 좀 더 광범위하게 규정되고 활용되고 있다. 2000년부터 경찰에서 공식적인 수사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파일링의 경우, 범죄심리학적 수사기법으로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이다. 또한 보안처분이나 교정 등 특정 형사정책 분야에서는 범죄심리학을 범죄자 개인의 재범예측 및 교화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
범죄심리학의 역사
범죄심리학의 기원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고자 한 초기 실증주의 범죄학에서 유래하였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초기의 범죄심리학. 현대 범죄학 이론의 기원은 18세기 중반 프랑스 계몽사상에서 유래한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Locke와 Hobbes는 개인의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함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자기 보존마저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계약으로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을 제한하고, 국가가 시민의 생명, 재산 및 자유를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정동근, 2003).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범죄를 신의 명령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악령, 악마 등과 같이 로마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범죄에 대한 처벌이었다.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시행한 ‘마녀사냥’도 그중 하나였으며, 이 잔인한 처벌은 국가의 법체계에 의해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계몽주의 이론가들은 마녀사냥과 같은 처벌은 매우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당시 유럽사회의 범죄와 처벌에 대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시민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가 제정한 법은 공공의 이익을 수호하되, 그것이 천부적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고전주의 범죄학은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에 근거하여 발전된 이론이다. 고전주의 학파는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합리적 존재로 보았고, 모든 인간은 일탈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였다. 합리적인 선택에 기초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처벌은 해당 범죄에 합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Vold, 1979).
이후 유럽에서는 약 100년 정도 고전주의 범죄학이 유행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 과학적 연구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즉, 순수한 사색에 의존한 이론적 탐구보다는 자연현상의 관찰과 과학적 분석에 의한 연구의 수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실증주의는 두 가지의 주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인간의 행동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에는 계층과 같은 사회적 요인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기아와 같은 정치적·역사적 요인도 있다. 개인의 뇌 구조나 생물학적 구성 및 정신적 능력과 같은 심리학적 요인도 포함되며, 이 모든 요인이 인간행동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제로 실증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방법을 채택한다. 그래서 실증주의자들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엄격한 경험적 방법을 사용한다(Siegel, 2001).
고전주의 범죄학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법률적 측면에서 형사사법 절차의 개혁을 강조하였다면, 실증주의 범죄학은 범죄에 대한 법률적 접근보다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의 특성과 범죄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였다. 범죄현상에 초점을 두고 실증적인 연구를 수행한 학자들은 1820년대 프랑스와 벨기에의 통계학자들이다. 1827년 프랑스에서는 범죄에 대한 전국적인 통계가 산출되었고 1831년 영국에서는 런던 경찰 범죄통계표가 처음으로 발행되었다.
당시 Quetelet, Guerry 그리고 Fletcher와 같은 학자들은 사회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Guerry는 1833년 그의 책 『프랑스의 도덕통계분석(Essay on the moral statistics of France)』에서 프랑스의 범죄 통계들을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지도상에 범죄분포를 표기하는 제도법(측량법)을 이용하였다. 분석을 위해 지도를 사용한 것에 근거해서 Guerry를 생태학적 범죄학 혹은 제도학파의 창시자로 부른다(Hagan, 1988). 반면, 천문학과 수학을 전공한 Quetelet는 범죄율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는 1831년에 출판한 『연령별 범죄 경향에 대한 연구(Research on the Propensity for Crime at Different Ages)』에서 통계를 이용하면 범죄현상의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Beirne & Messerschmidt, 2000).
Darwin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의 출판으로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탈리아의 범죄학자이자 외과의사인 Lombroso(1876)는 『범죄인론(L'uomo delinquente)』에서 범죄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주장하였다. 범죄인을 뇌의 구조 및 원시적 행동의 하나인 격세유전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의 특성과 행동이 생물학적 요인에 근거한다는 가설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후 연구를 수행하면서 퇴화와 정신적 결함을 자신의 이론에 포함시켰고, 점차 다양한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요인들을 포함하는 쪽으로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다.
형사 사법 제도 내에서 심리학 적용의 역사. 심리학이 사법제도 및 그 이외 범죄자와 관련된 분야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반으로, 범죄행위에 정신이상과 같은 심리학적 측면을 고려하면서부터이다. 그 이후로도 사회 변화와 더불어 법학이나 범죄학, 사회학과 같은 관련 학문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범죄심리학에 기여한 바가 크다.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Krafft-Ebing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1872년에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라는 책을 펴냈다(차재호, 2001 재인용). 법학을 전공한 Gross는 범죄수사학을 많이 연구를 하였다. 그는 범죄의 과학적 접근법으로 범죄현상학, 경찰학 그리고 범죄심리학을 포함시켰는데, 그의 범죄심리학은 순수 심리학은 아니고 범죄심리학 연구에 기초하여 범죄수사의 기법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Gross, 1911).
Ebbinghaus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 심리학에서는 기억에 대한 연구가 매우 일반화되었다(한국심리학회, 2004). Stern이 1901년 수행한 기억 연구는 학생들에게 45초 동안 그림 하나를 보여준 뒤 그들이 다양한 시간 간격을 두고 그 그림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를 알아보았다. 이 실험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목격자 증언의 신뢰성 연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Stern(1903)의 연구에 의하면 기억은 일반적으로 부정확하며, 그림을 본 시간과 그것을 회상하도록 요구한 시간 간격이 크면 클수록 오류는 더욱 증가했다. 특히 실험자가 피험자에게 유도질문을 할 경우에 잘못된 정보를 회상하는 정도가 컸다. 이렇듯 기억에 관한 심리학이 목격자 증언과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1960년대가 되어서야 심리학자들은 실제 사건기억(일화 기억; episodic memory)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1970년대 목격자 증언에 대한 연구를 구체적으로 수행했다.
Lombroso에 의해 실증주의 범죄학이 널리 호응을 받은 1900년대 초, Münsterberg(1908)는 심리학적 지식이 형사 사법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Münsterberg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Wundt의 초청으로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후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Wundt와 함께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증언석에서(On the Witness Stand)』라는 저서를 통해 심리학적 지식을 법원단계에 적용하여 법정심리학의 초석을 마련한 선구자로도 불린다(Wrightsman, 2001). 또한 혈압, 호흡, 피부전기 반응 등 일련의 생리적 변화가 정서에 미치는 효과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생리적 변화를 거짓말 탐지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여, 오늘날 거짓말 탐지 이론의 생리학적 배경을 제공하기도 하였다(박판규, 2003).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는 과학적인 범죄심리학의 응용이 쇠약해진 시기이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 동안 범죄심리학 연구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고, 사법시스템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서 인간의 사회행동과 기억에 대한 이해의 요구가 증가하였고 사회 심리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를 사회정책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증가했다(Wrightsman, 2001).
1960년대 이후에는 범죄에 대한 심리학전 원인론과 사회학적 원인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정신분석, 성격, 인지발달, 학습, 지능 등을 적용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 중에서도 정신분석을 적용한 연구가 활발했다. 또한 사회학적 원이론중에서 사회과정이론에 해당하는 Sutherland(1947)의 차별적 접촉이론(Differential association theory), Burgess와 Akers(1966)의 차별적 강화이론(Differential reinforcement theory), Sykes와 Matza(1957)의 중화이론(Neutralization theory)등은 심리학적 개념을 차용한 사회학적 이론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범죄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이를 형사 사법 분야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Wrightsman, 2001). 이는 범죄심리학의 순수 이론 영역과 이를 형사 사법 분야에 적용하려는 법정심리학의 두 영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범죄 및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실험심리학자들과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연구결과를 배심재판제도나 양형판단 등 형사사법적 실무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활발했다.
범죄심리학의 주제와 영역
연구주제
과거 범죄심리학의 연구 주제는 범죄의 원인에 한정되었다. 그 당시 범죄심리학은 범죄의 원인을 거시적인 사회에 돌리지 않고 개인적 요인에서 찾는 일종의 개인 내적 범죄원인론에 초점을 두었다. 범죄의 원인을 밝히고자 한 이러한 범죄심리학적 연구는 그 원인을 실증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문제점과 이런 연구가 범죄의 분석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주목받지 못하는 이론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행동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최근 연구방법론의 눈부신 발전은 심리학적 범죄원인론이 다시 빛을 발하게 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최근 뇌의 기능적 원리와 연관시켜 인간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범죄연구의 주제를 다시 한번 인간 내적 기능의 저하와 손상으로 회귀시켰다.
범죄의 실증적 연구 중 심리학적 원인을 찾고자 하는 연구는 1980년대 이르러 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주로 범죄행동에 대한 심리적 원인, 범행동기 등을 밝히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범죄에 대한 심리학 이론의 적용이나 살인, 강간, 성범죄, 아동학대 등 특정 문제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도 범죄심리학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살인 등의 강력범죄, 청소년비행, 성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과 관련된 심리학적 연구가 오래전부터 수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심리학적 연구의 결과들이 최근에는 형사 사법 관련 분야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영구영역
미국의 경우 범죄심리학이 독자적 학문분야로 있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범죄심리학적 연구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범죄학, 법과학, 행동과학, 형사정책, 법심리학, 법정심리학과 같은 분야에서 심리학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영국은 범죄심리학은 수사심리학 등과 함께 매우 활발하게 연구물을 산출하는 전문화된 연구 영역으로 기능해 왔다. 최근에는 북미지역에서 이루어진 법정심리 분야에서의 연구가 들어오면서 법정·범죄 심리학이라는 영역은 특정 범죄인의 심리기제를 연구하는 미시적인 연구 영역뿐만 아니라 형사 사법 절차에 포함되는 경찰·법원·교정 단계에서 활용되는 광의의 심리학적 연구 영역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Bartol과 Bartol(2004)은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는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것을 범죄심리학이라 보고, 형사 및 민사 분야를 포함한 사법 시스템 전반에 걸친 심리학의 전문적인 실무 적용을 법정심리학으로 정의하여 이 둘을 구분하였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범죄심리학과 법정심리학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고 있지만, 범죄심리학은 범죄행위에 대한 이해 부분에 중점을 두는 연구 영역인 반면, 법정심리학은 사법단계마다 심리학을 활용하는 측면에 중점을 두는 연구 영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활용도가 높은 심리학 영역
심리학의 다양한 수수 학문 영역이 사법절차의 요구에 따라 주제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생물심리학 분야에서는 범죄의 원인론과 관련하여 유전의 영향력 그리고 신경생물학적 피해와 관련된 행동적 특성을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발달심리학의 경우 공격성과 청소년 비행에 관한 수많은 연구를 수행하여 왔다. 인지심리학은 목격자 증언과 인지면담 등 인터뷰 기법의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사회심리학은 배심원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한 연구와 미디어의 효과에 관한 많은 연구물을 생산하였다. 인사심리학은 경찰의 선발과정 및 업무 관련 스트레스 조절에 이바지하였고, 성격심리학은 프로파일링 기법의 개발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임상심리학은 판결 전·후 피고인에 대한 평가와 위험성 예측에 이바지하였고 상담심리학은 교정교화 및 심리치료 그리고 가석방 심사 및 형 정지 결정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처럼 전통적인 심리학의 하위영역은 사법절차의 각 단계 및 분야마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최근의 범죄심리학 및 법정심리학 분야는 이들 각각의 하위 연구 주제를 고유한 연구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