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장애와 양극성 관련 장애
우울장애와 양극성 및 관련 장애는 DSM-Ⅳ에서는 기분장애(Mood Disorders)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그 원인이나 예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DSM-5에서는 따로 독립된 범주로 분류되었다. 여기서는 두 장애 모두 정서적으로 중요한 증상인 기분과 관련된 문제를 보이므로 함께 살펴보겠다.
우울장애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s)는 슬픔, 공허함, 과민한 기분 등을 보이고, 일상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신체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APA, 2013). 우울장애의 하위 유형은 파괴적 기분조절장애(Disruptive Dysregulation Disorder),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지속적 우울장애(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Dysthymia), 월경 전 불쾌장애(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등이 있으며, 장애의 기간, 시점, 추정되는 원인에 따라 구분된다. 여기서는 우울장애 가운데 가장 유병률이 높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요우울장애에 대해 알아보겠다.
주요우울장애는 핵심적인 9개 증상 가운데 5개 이상을 2주 이상 경험하는 주요우울 삽화(major depressive episode)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핵심 증상 9개는 우울한 기분, 일상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의 감소, 식욕이나 체중의 감소 또는 증가, 불면 또는 수면과다, 정신운동의 초조나 지체, 피로감이나 활력 상실,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집중의 어려움이나 우유부단함, 자살생각이나 계획이다(APA, 2013).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우울한 기분과 우울장애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타인과 비교하여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문제가 해결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기분은 다시 안정된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이 없어지지 않고 일정한 기간을 넘어서 계속 지속되면 정상 수준이 아닌 심리장애라고 판단하게 된다.
유병률은 미국의 경우 약 7%이며 18~29세의 유병률은 60세 이상보다 3배 더 높게 나타나 나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여성은 약 5~9%, 남성이 약 2~3%로 여성이 1.5~3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병률은 1.5%이며 여성 2.0%, 남성 1.1%로 여성이 약 2배 정도 더 높았다(보건복지부, 2017).
주요우울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학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유전과 생화학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전적 측면에서 보면 유전자를 100% 공유한 일란성쌍둥이가 50%만을 공유한 이란성쌍둥이보다 주요우울장애의 일치율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Kendler et al., 1993). 다른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일란성쌍둥이의 일치율은 46%였고 이란성 쌍둥이는 그 일치율이 20%로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McGuffin et al., 1996). 쌍둥이 간 일치율은 성별에 따라 달랐는데(Bierut et al., 1999), 여성이 남성보다 일치율이 더 높았으며 여성의 유전 가능성은 36-44%, 남성은 18-24%로 추정되었다. 생화학적 측면을 보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의 주된 기능은 정서 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이 수준이 낮으면 기분 변화가 빈번하고 충동적으로 된다. 마찬가지로 노르에피네프린의 부족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로토닌이 노르에피네프린의 조절에 관여한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한편, 주요우울증이 있더라도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수준이 낮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것처럼(Belmaker & Agam, 2008), 세로토닌 또는 노르에피네프린과 우울증 간의 관련성이 단순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즉,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이 단독으로 작용하기보다 두 가지 혹은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Whisman, Johnson, & Smolen, 2011).
심리학적 요인은 다양한 이론에 근거하여 우울증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정신역동이론에서는 애착 대상에 대한 상실이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본다(Freud, 1917/1957). 상실을 경험하거나 예견하면 대상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상실로 인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되어 자신이 무가치하기 때문에 버려졌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분노를 상대방에게 직접 표현하기 어려워 그 공격성을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죄책감과 자기 처벌에 빠져 우울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죽음이나 이혼과 같은 상실은 우울의 위험성을 높인다(Kendler et al., 2003). 하지만 상실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항상 우울해 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상실을 겪은 사람들 가운데 우울한 사람은 10%를 넘지 않았다는 연구가 있었으며(Bonnano, 2004) 다른 연구들에서도 상실과 우울의 관련성이 항상 일관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행동주의이론은 행동 이후에 나타나는 강화의 여부가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Lewinson, 1974).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게 주어지지 않으면 동기가 낮아지고 우울증이 유발된다. 예를 들어,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서류 전형이나 면접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게 되면, 회사에 지원하려는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울증으로 인해 활동이 저하되거나 사회적으로 위축되면 다시 강화받을 기회가 줄어들게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보상의 정도와 우울 간의 관계는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었는데, 우울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긍정적 보상을 덜 경험하고(Bylsma et al., 2011), 긍정적 사건이 많을수록 행복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Carvalho & Hopko, 2011).
인지주의이론에서는 부정적 생각이 우울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며, 특히 인지 3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제안한다(Beck et al., 1979). 인지 3 요인은 자신(“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환경 또는 세상(“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 끔찍하다.”), 미래(“앞으로 나는 희망이 없고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의미한다. 또한 Aaron Beck은 부정적 사건을 경험할 때 인지 왜곡을 통해 우울증이 나타난다고 제안하였는데, 사건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생각이 우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인지 왜곡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분법적 사고(all-or-nothing thinking)의 경우 완벽하게 성공하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A+ 학점이 아닌 A 또는 B+를 받게 되면 F학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여 기분이 저하된다.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는 하나의 부정적 사건을 경험하면 다른 상황에서도 똑같이 부정적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대인관계에서 어떤 사람과 다투고 헤어지는 일이 있었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비슷하게 갈등을 겪고 관계가 끝나버릴 것이라고 과도하게 일반화시킨다. 이외에도 부정적 사건의 의미는 더 과장하고 긍정적 사건에 대해서는 축소하여 평가하는 극대화와 극소화(magnification and minimization), 타인의 행동이나 문제의 원인이 자신과 관련 있다고 추측하는 개인화(personalization) 등이 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Seligman, 1975)이론에서는 무기력이 우울증 유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동물들은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기충격을 받을 때 무기력하거나 동기 저하 등 우울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하면 우울해진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성만으로는 우울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낮은 자존감이나 우울의 정도와 지속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서, 인지적 요소를 고려하여 이론이 수정되었다(Abramson et al, 1978). 수정된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실패(예로, 애인과 싸우고 헤어진 상황)를 경험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특히 내적/외적, 안정적/불안정적, 전반적/특정적 귀인 가운데 내적(“내 잘못이야. 난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봐.”), 안정적(“나의 변하지 않는 성격이 문제야.”), 전반적(“다른 사람을 사귀어도 똑같은 일이 생길 거야.”) 귀인을 하는 사람들이 우울에 취약하다. 즉, 우울한 사람의 낮은 자존감은 부정적 사건에 대한 내부 귀인과 관련되고, 우울의 지속은 안정적 귀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양극성 및 관련 장애
양극성 및 관련 장애(Bipolar and Related Disorders) 범주에는 양극성Ⅰ장애(Bipolar Ⅰ Disorder), 양극성Ⅱ장애(Bipolar Ⅱ Disorder), 순환성장애(Cyclothymic Disorder)가 포함되어 있으며(APA, 2013) 여기에서는 양극성Ⅰ장애와 양극성Ⅱ장애에 대해 살펴보겠다.
양극성장애는 기분의 양쪽 극단인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며 과거에는 조울증이라고 불렸다. 조증은 기분이 들떠 있는 고양된 상태로, 지나치게 활력이 넘치고 자신감이 과도하게 팽창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보다 매우 과대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고, 타인이 자신의 말이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민해지고 분노나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매우 충동적이어서 예측하지 못하거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정신역동이론에 따르면,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조증이 우울증에 대한 방어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증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깊은 절망을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 외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극성Ⅰ장애는 비정상적으로 고양되거나 팽창 또는 흥분된 기분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목표 지향적 활동이나 활력이 증가하는 양상이 최소한 1주일 이상 지속되는 조증 삽화(manic episode)를 보인다. 증상에는 ‘팽창된 자신감, 수면에 대한 욕구 감소, 말이 많아짐, 사고 비약, 주의산만, 목표 지향적 활동이나 정신운동성 흥분,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활동에 몰두함’이 있고, 이 7개 가운데 적어도 3개(기분이 과민한 상태에서는 4개) 이상이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삽화로 인해 사회적 또는 직업적 기능에 뚜렷한 손상이 발생하고, 심하면 망상이나 환각을 동반하는 정신증적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양극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주요우울 삽화를 경험한 적이 없어도 조증 삽화가 1번 이상 나타나면 양극성Ⅰ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주요우울 삽화나 경조증 삽화(hypomanic episode)가 있더라도 이전에 조증 삽화를 경험한 적이 있으면, 그것은 주요우울장애가 아닌 양극성도 장애에 해당된다.
양극성Ⅱ장애는 양극성Ⅰ장애에서 나타나는 7개 증상에서는 동일하지만 증상의 정도가 경미하고 지속 기간이 최소한 4일로 상대적으로 짧은 경조증 삽화(hypomanic episode)를 보인다. 삽화를 경함하기 전과 다르게 기능 변화가 나타나지만,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일상적 기능에 심각한 손상이나 정신증적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조증 삽화를 경험한 적이 없으면서 최소한 1번의 주요우울 삽화를 경험해야 양극성Ⅱ장애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를 현재 주요우울 삽화에 해당하더라도 이전에 경조증 삽화를 경험한 적이 있으면 주요우울장애가 아닌 양극성Ⅱ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유병률은 미국의 경우 양극성Ⅰ장애 0.6%, 양극성Ⅱ장애 0.8%이며 남녀 비율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APA, 2013). 평생유병률은 남녀 약1.1 : 1이며, 남성이 여성보다 조증 삽화를 먼저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양극성Ⅰ장애와 양극성Ⅱ장애를 합한 1년 유병률과 평생유병률은 모두 0.1%이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보건복지부, 2017). 양극성장애는 기분이 고양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각한 장애라고 간주하지 않지만, 우울장애와 더불어 자살 가능성이 매우 높아 평생 자살 위험도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 약 15배 정도 높다. 또한 조증 상태보다 우울증 상태일 때 자살 가능성이 더 높아 주변의 세심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