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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협력하도록 훈련되지 않은 아이)

by Uzoob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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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도록 훈련되지 않은 아이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염려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모든 일은 성취될 수 있으며 만사가 미리 예정되어 버릴 것이다. 그 후로는 예기치 않았던 기회를 한 번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장래에 기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게 연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행운이다.

어떤 외계의 방문자가 지구라는 혹성을 관찰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것이다. ‘각종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고 안전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비를 피할 목적으로 집을 짓고 몸을 따뜻이 하기 위해 의복을 만들고, 여행을 낙으로 삼기 위해 길을 만든 인간들은 확실히 자기 자신을 지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약하다. 우리는 사자나 고릴라와 같이 강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다른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숱한 위험에 혼자 맞서는 일에 매우 빨리 적응한다.

어떤 동물들은 자기의 약함을 집단에 의해서 보호받는다. 즉,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 그런데 인간은 세계의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종들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깊은 협동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자손은 특히 약하며 수년에 걸친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환경에 완전히 굴복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떠한 인간도 한때는 가장 약하고 어렸던 적이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모든 면에 있어서 협력하도록 훈련되지 않은 아이는 결국 고정적인 열등감과 비관주의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이 이해된다. 또한 우리의 인생이, 가장 협력적인 사람에게조차 여러 가지 문제를 계속 제기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어떤 개인도 우월이라는 자기의 궁극적인 목표나 환경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목표에 도달하는 위치까지 다다를 수는 없다. 인생은 너무 짧으며 우리의 육체는 너무도 약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생의 세 가지 문제에는 언제라도 풍부하고 충실한 해결책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 해결책에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자기가 달성한 바에 계속 만족한 채 머무를 수는 없다. 협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계속된다. 협력적인 개인의 경우에는 우리가 공동으로 처해 있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며,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고 공헌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도 염려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만일 우리가 이제 더 이상의 어떠한 역경도 없는 위치에 도달했다고 상상해 보면, 그런 상황에 있는 인생이란 지극히 따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일은 성취될 수 있으며 만사가 미리 예정되어 버릴 것이다. 그 후로는 예기치 않았던 기회를 한 번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장래에 기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인생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주로 우리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다. 만일 우리가 만사에 확신을 갖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면 결국 토론이나 발견 따위는 없을 것이다. 과학도 종말에 다다라 우리 주위의 우주도 지나치게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달성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예술이나 종교 역시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게 연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엄밀히 말해 우리에게 행운이다.

인간의 여러 가지 노력은 계속되고 우리는 항상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발명할 수도 있으며, 협력과 공헌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일도 가능하다.

정신병 환자들은 처음부터 움직임이 통제되어 버린다. 인생 문제에 있어서 그가 내리는 해결은 저급한 수준에 그치며 따라서 그가 받는 어려움도 가중된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가 부딪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역경과 과감히 맞서며 즉각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타인에게 공헌할 수가 있으며, 타인에게 뒤지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신세를 지지도 않는다. 그는 특별한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용기와 자립심을 갖고 사회 감정을 조화시켜 나가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해 간다.
우월이라는 목표는 개개인에게 있어서 매우 개인적이며 독창적인 것이다. 그 목표는 한 사람이 인생에 부여한 의미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의미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독특한 인생 방식 속에서 만들어지며, 스스로 창작한 기묘한 멜로디처럼 인생을 관통하여 울려 퍼진다.
그는 자기의 인생 방식 속에서의 목표를 한 번에 도식화할 수 있다는 듯이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막연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주는 시사점에서 추측해 내야만 한다. 인생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인이 사용한 언어에 담긴 의미는 그가 사용한 언어 이상의 것이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대부분은 독자들의 상상과 추측에 맡겨진다. 우리는 시 한 구절 한 구절 사이의 여백을 읽어 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인생 방식도 매우 복잡한 조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는 시의 구절과 구절 사이의 여백을 읽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인생의 의미를 맛보는 기량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란 인생의 최초 4∼5년 사이에 만들어진다. 게다가 그 의미는 수학적인 과정에 의해 도달되는 게 아니라 목적도 없이 더듬어 보는 손놀림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감정에 의해서, 암시를 받고 설명을 구하며 만지작거리는 손놀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월이라는 목표도 마찬가지로 손의 더듬거림과 추측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것은 동적인 경향이며 생명을 건 탐구라 할 수 있다. 지도 위에 보인다거나 지리학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것이다.
아무도 자기의 우월 목표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는 개인의 직업적 목표는 다양한 목표 중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목표가 구체적으로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목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방법은 수없이 변할 수 있다.
가령 의사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의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내과 전문의라든가 아니면 생물학 전문가가 되고 싶을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독특한 관심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그가 어느 정도까지 동료에게 도움이 되려고 훈련을 하는지 또 어느 정도까지 타인을 도울지에 대한 한계를 정하는지 보게 된다.
그는 이런 목표로서 특정한 열등감에 대해 보상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의 직업 혹은 다른 분야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그가 보상하려고 하는 특정한 감정을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간혹 의사들이 매우 어린 시절에 죽음에 대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한다. 죽음은 그들에게 인간의 불안적인 요소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인상을 준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들의 형제나 부모가 죽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나중에 받는 훈련은 자신을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죽음에 대해 더욱 확실한 길을 찾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게 한다.
다른 누군가는 교사가 되는 일을 자기의 구체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사들도 실로 여러 유형이 있다. 만약 교사가 저급한 정도의 사회 감정밖에 갖고 있지 않다면, 교사가 되겠다는 그의 우월 목표는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반면 고도의 사회 감정을 갖고 있는 교사는 자기의 제자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그는 인류의 복리에 진심으로 공헌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여기서 교사들의 능력이나 관심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또 이러한 모든 표현이 그들의 목표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나의 목표가 구체적이 되면 개인의 무한한 잠재력은 이 목표에 적합하게 축소되고 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목표 전체, 그 원형은 항상 이러한 한계를 조정하여 어떤 상황 아래에서라도 인생에 부여한 의미와 우월감을 잡기 위한 궁극적인 이상을 표현하려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개인들이 표현하는 그 이면의 것을 보아야 한다.
개개인은 자기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할 때 그 방법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자신의 구체적인 목표의 하나인 직업을 바꾸는 일과 같다. 우리는 이때도 역시 저류를 이루는 인격의 통일된 일관성을 탐구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관성은 모든 표현 속에 정착해 있다.
정삼각형을 여러 가지 다른 위치에 놓고 볼 때 삼각형의 모양은 언제나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항상 공통적으로 일치되는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하나의 표현에 의해서는 결코 다 표현해 낼 수 없으며, 단지 원형을 모든 표현들 속에서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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