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접근 방법>
다른 한편,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 과정과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뇌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생리학으로부터 배웠다. 예를 들면, 영국의 철학자 Thomas Hobbs는 마음과 신체가 연결되어 있어 뇌의 활동이 마음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프랑스 외과의사 Franz Joseph Gall은 뇌가 크면 그 정신 능력도 커진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골상학(phrenology)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골상학은 기억, 행복과 같은 특정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뇌의 과정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개발되어 이용 가능한데, 뇌의 특정 부분이 특정 심리적 기능애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은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1) 초기의 접근
근데 심리학이 철학에서 독립한 것은 1879년 독일의 심리학자 Wilhelm Wundt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심리학 실험을 개설한 때이다. 보통 심리학계에서는 이때를 심리학이 학문으로 태동한 공식적인 시기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창시자가 Wundt라도 하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즉, 심리학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적 학문으로 그 위상을 갖게 되었으며, 현대 심리학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려되었다.
비록 심릭학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딻아 100년 조금 넘었지만, 심리학자들은 매우 다양한 접근을 가지고 인간의 정신적 과정과 행동을 연구했다. 이러한 접근은 심리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를 하는 참조의 틀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어떻게 관찰하고 수집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것인지 가 틀을 제공해 준다. 초기의 접근에는 구조주의, 기능주의, 향태주의 등이 있다.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심리학을 창시한 Wundt가 주도한 것으로 최초의 심리학적 운동이다. 이류 그의 미국인 학생인 Edward Titchener는 구조주의를 미국에 전파하여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구조주의자들은 즉각적인 의식(consciousness) 경험의 구조와 그 구성요소들을 밝히는 것이 심리학이 연구해야 할 타당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이때 의식이란 깨어있는 상태의 자신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으로, 자신의 마음이나 세계에 대하여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광범위한데, Wundt는 보는 것, 듣는 것, 맛보고 냄새 맡는 것, 만져서 느끼는 것과 같은 감각 그리고 기쁨, 분노, 두려움, 슬픔과 같은 감정이 의식을 구성하는 두 주요 유형이라고 생각했다(Wundt, 1896).
구조주의자들은 모든 의식적 경험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의 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합해져서 정신적 구조를 만드는지 그 규칙을 밝히고자 하였다. 구조주의자들은 마음의 구성요소를 밝히기 위해 실험이나 자기 관찰과 같은 방법도 사용했지만, 주로 내성법(introspec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내성법은 말 그대로 자신의 내부를 본다는 의미로,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자기 점검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Titchener(1910)는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자극을 보여주고 그것을 몇몇의 개별적인 특징으로 분석하도록 요청하였다. 가령 레몬은 보여주고 그것의 노란 정도, 밝기, 모양 및 기타 특징들을 기술하도록 요청했다.
이와 같은 내성법은 방법의 과학적 측면에서 그 하계좀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개인이 보고하는 내용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한 대상에 대한 의식적 경험에 대하여 동일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보고할 때, 그 보고가 서로 일치한다고 보장하기 어려웠다. 가령 구름을 처음에는 솜사탕처럼 생긴 것으로 보고했다가 나중에는 병아리처럼 생겼다고 보고하는 등, 훈현 받은 관찰자도 보고하는 시기에 따라 자신의 의식적 경험을 다르게 보고하기 때문에, 무엇이 정확한 보고인제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또한, 집중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단슌한 감각 경험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즉 의식적인 경험에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함으로써, 어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과학은 반복관찰을 통해서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을 요구하는데, 내성법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구조주의는 점차 쇠퇴하였다.
기능주의
기능주의는 구조쥬의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의식적인 마음이 어떻게 그리고 왜 작용하는지를 다루는 심리학파이다. 구조주의가 정신적 과정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기능주의자들은 인간이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기능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Willian James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 구성 요소를 밝히기보다는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그 기능을 밝히는데 초첨을 두었다. 그래서 기능주의의 주요 목표는 의식의 내용이 어떻게 함께 기능하고 작동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Boring, 1950). 이러한 이유로 이 학파를 기능주의라고 부른다.
James는 자신의 저서 (심리학의 원리)에서 의식을 계속해서 발전하는 요소들의 역동적인 모임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의식이란 결코 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지 않고 끝이 없이 흐르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또한 그는 의식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러한 내용이 어떻게 기능하고 작용하는지도 함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통해서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어떻게 행동을 유도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기능주의자들은 사건에 대한 관심을 뇌의 수준이 아니라 집단의 수준에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쓸 수 있는 지식을 얻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학습하는게 그리고 그들의 목표와 신념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있었다.
기능주의자들은 상당수가 미국인인데, 그들은 Charles Darwin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선택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심히가 동물의 심리와 연관되어 있음을 이론화하였다. 또한 그들은 교육방법의 개선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한편, 기능주의자들 역시 구조주의자들처럼 심리학의 연구 대상을 의식으로 삼고 있었으며 그 연구 기법으로 내성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학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식이라는 연구 대상은 그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형태주의(Gestalt) 심리학
심리학자들이 형태주의라고 번역하는 게슈탈트(gestalt)라는 말은 형태, 전체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에서 온 말이다. 심리학에 대한 이러한 접근도 20세기 초에 나타났는 데, 이것은 마음이나 행동의 부분들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하는 하나의 심리학파이다. 즉, 향태주의 심리학자들도 의식에 대해서 특히, 지각을 하는 동안 발생하는 의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험의 개별적인 요소들을 나누기보다는 사고나 경험의 전체적인 패턴을 강조했다.
Max Wertheimer와 또 다른 과학자들은 우리 사고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의 지각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본 갓을 구조화하는 산천적 경향성에서 나온다고 지각했다. 그들은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라는 격안처럼 의식적 경험이 그것의 개별적 부분들의 합 이상이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마음이 경험에 구조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 부분들을 특별한 것으로 조직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을 지각적 틀로 분석하였다. 즉 그들은 잔체적인 경험으로서 지각하고 사고하는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형태주의는 인간의 행위 자체를 너무 원자론적 관점이나 기계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저항과 관련이 된다. 특히, 인간의 행동 중에 이상행동을 해석할 때 너무 구체적으로 나눈 행동에 주목하는 기존의 관점을 반박하고 있으며, 인간행동을 전체적인 측면에서 다시 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게슈탈트의 개념을 상담이나 심리치료의 영역까지 확장시킨 것으로, 신체와 정신, 환경을 상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형태주의 심리학의 영향력이 포괄적인 만큼, 이러한 접근은 과학적으로 탄탄한 근거가 취약해 보여 폭넓은 추종자들을 확보하지는 못했다(Lefton, 2000).
정신분석
정신분석은 Sigmund Freud가 창시한 것으로, 이 접근은 인간에 대하여 일반적인 심리학과 매우 다른 가정 즉, ’무의식(unconsciousness)’이라 불리는 의식 반대의 개념을 가정한다.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의식 영역의 행동이나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이 의식 밖에 있지만 무의식에는 억압된 감정과 욕망, 생각 등이 있고, 그것이 인간 행동과 사고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즉 이 접근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궁극적 원인은 무의식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Freud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하여 그 내용과 구조를 연구했다.
차음에는 Freud는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를 지형학적 모형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다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지금 당장 인식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 다시금 인식할 수 있는 전의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전의식에서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의식에서 억압된 무의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전의식은 넓은 의미에서 무의식에 포함되는 개념의 하나라고 본다. 이후 Freud는 이러한 지형학적 모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역동적 정신구조론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익히 알려진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원초아(id)의 3원 구조이다.
적응과 관련해서, 정신분석은 인간의 행동 양식을 심리내적인 욕구와 외부 세계와의 충돌이나 조화의 상태로 이해한다. 그래서 심리 내적 욕구와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조화를 이룰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 고통과 같은 이상행동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적 접근에서는 심리적 부적응이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미해결 된 갈등으로부터 생긴 불안의 결과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장신분석인데, 여기서는 한 개인의 사고 감정,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초기 성적 경험과 무의식적 성적 욕망의 탐색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후에 많으 심리학자들이 Freud의 정신분석적 접근에 동참하였다. 대표적으로 Carl Jung과 Alfred Adler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에 이론적인 견해 차이로 Freud와 결별하고, Freud가 주장한 이론의 중요한 측면과 반대되는 장신분석이론을 발전시켰다. Jung과 Adler 같은 신프로이트 학파는 Freud가 강조한 성이나 공격성과 같은 욕구를 상대적으로 달 강조하는 대신, 사회문화적이거나 대인관계적인 측면을 중요시하였다. 가령 Jung은 내향성과 외향성 개념을 포함한 다차원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유형화된 성격 이론을 발전시켰다. Adler는 아동기의 열등의식이나 우월감의 추구 동기와 같은 개념을 강조하는 성격이론을 제시하였다. 정신분석이론은 발달심리나 심리치료 등 이후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도 상당히 있어 왔다. 가령 Freud의 이론은 객관덕인 과학적 연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의 관찰하고 그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Freud가 주장한 이론의 타당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정신분석덕 접근은 오늘날 임상이나 상담 심리학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도, 다른 영역에서는 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