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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사람이 꿈을 통해 기대하는 것, 꿈은 현실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가)

by Uzoob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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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꿈을 통해 기대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꾼 꿈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지만 자기가 꾼 꿈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들은 꿈이 기묘하며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인간은 꿈을 꿀 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왜 꿈을 꾸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항상 꿈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인류 최초의 시기부터 이런 관심은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포괄적 내지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꿈 해석의 이론은 두 가지밖에 없다.

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두 주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와 개인심리학파이다. 그리고 이들 두 개 학파 중에서 개인심리학만이 상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설명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꿈을 이해하려고 했던 옛날 사람들의 시도는 물론 과학적이지는 않았지만 연구해 볼 가치는 있다. 적어도 그 연구는 사람들이 꿈을 어떻게 보아 왔는지, 꿈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명확히 해 준다.
꿈은 인간 심리의 창조적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꿈을 통해 무엇을 기대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꿈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곧 놀랄 만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그동안 꿈은 미래에 관계된다는 논리가 당연한 사실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자주 꿈속에서 어떤 지배적인 영이나 신, 조상과 같은 존재들이 그들의 심리 속에 붙어서 영향을 준다고 느껴 왔다. 그들은 곤란한 일에 직면했을 때 뭔가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 꿈을 이용했다.
꿈에 관한 고대의 서적들은 어떤 꿈이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그들의 꿈속에서 어떤 전조나 예언을 점쳤다. 그리스인과 이집트인들은 장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신성한 꿈을 꾸게 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신전에 제사를 지냈다. 그런 꿈은 치유력이 있으며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꿈을 불러내기 위해 단식이나 목욕을 하는 등 대단한 노력을 했으며, 자신들의 꿈에 대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구약성서’에도 꿈은 항상 뭔가 미래의 사건을 계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꿈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생시에 실제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꿈속에서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이며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언 가능하다고 믿는다.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견해는 매우 하찮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처음 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때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예언의 측면에 있어서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의 모든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입장에 있다는 점이다.
꿈은 각성 시의 사고보다 결코 지적이거나 예언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꿈이 미래에 관련되어 있다는 인류의 전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그 믿음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을 올바른 방법으로 관찰해 볼 때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의 열쇠가 발견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종종 꿈이 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꿈을 꾸는 개인적인 목적은 미래에 다가올 일을 안내받고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꿈에 대한 예언자적 견해를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그가 어떠한 해결을 원하고 있는지, 어디로부터 그 해결책을 얻기 바라는지를 고찰해 보아야만 한다.
꿈에 의해 주어지는 어떤 해석도, 상황 전체를 상식적으로 바라보고 사고함으로써 얻는 해결보다 나은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꿈을 꾸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수면 속에서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꿈이 과학적으로 이해 가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해석은 몇 가지 점에서 꿈을 과학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 버렸다. 가령 프로이트는 심리의 움직임에는 낮과 밤사이에 틈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 보고, 꿈에는 일상의 사고 법칙과 모순되는 독특한 자신만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모순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결국 심리를 다룸에 있어서 비과학적인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원시적인 모든 민족과 고대 철학자의 사고에는 이와 같이 모든 관념을 대립적인 명제로 나누어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취급하려는 자세가 발견된다.
대립 명제적 태도는 신경증 환자들에게서 매우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좌우, 남녀, 한온, 경중, 강약 등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런 것들은 반대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다양성이다. 그것들은 어떤 이상적인 허구를 향한 각각의 근사치에 따라 배열되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선악도, 정상과 이상도 모두 대립하는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변수이다.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또 꿈의 사고와 낮의 사고를 대립되는 모순으로 취급하는 어떠한 이론도 비과학적임에 틀림없다. 프로이트의 견해 가운데 또 하나의 난점은 꿈이 성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 역시 인간의 노력이나 활동으로부터 꿈을 분리시켜 버렸다.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꿈은 인격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학파는 스스로 꿈의 성적 해석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프로이트 또한 꿈속에서도 죽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욕망 표현을 볼 수 있다고 시인했다. 우리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하나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꿈은 이미 보아 왔듯이 모든 문제에 대해 안이한 해결책을 얻으려는 노력이며 그 개인이 용기를 내야 할 일에 있어서 실패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프로이트의 말은 지극히 은유적이며 어떻게 인격 전체가 꿈속에서 반영되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꿈의 인생은 낮 동안의 생활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시도 속에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힌트가 많이 주어져 있다. 특히 유익한 점은 꿈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잠재해 있는 꿈의 사상이라는 힌트이다. 꿈에서는 인간 심리의 넓은 활동을 볼 수 있다.
개인심리학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정신분석에서 소홀했던 내용은 심리학이라는 과학에서 바로 제1의 필요조건, 즉 인격의 일관성과 개인의 모든 표현에서 나타나는 동일성이라는 인식이다. 꿈 해석에 관한 결정적인 물음, 다시 말해 ‘꿈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꿈을 꾸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프로이트파의 답변을 보면 그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이 보인다.
분석심리학자는 꿈의 목적에 대해 ‘그 사람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결코 모든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꿈이 분명치 않다거나 그 개인이 꿈을 잊어버렸다거나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면 어디에 만족이 있겠는가. 반복하지만 인간은 모두 꿈을 꾸지만 거의 모두가 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꿈은 현실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가

서른두 살의 신경증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녀는 둘째 딸로서 대개의 둘째 아이가 그렇듯이 매우 야심적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맏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가 신경쇠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기보다 연상인 기혼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그 애인이 사업에 실패해 버렸다. 그와 결혼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지만 그 남자는 이혼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시골에 있는 동안 내 아파트를 빌려 주기로 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런데 그는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는 정직하지도 않고 직업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가 아파트 비용을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나가게 할 수밖에 없었죠.”
이 꿈이 그녀의 현재 생활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녀는 당시 사업에 실패한 유부남과 과연 결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인은 가난하고 그녀를 부양할 능력도 없었다. 더구나 그는 지불할 돈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를 저녁 식사에 데리고 간 적도 있다.
이 꿈의 목적은 그 결혼에 반대하는 감정을 북돋는 일이었다. 그녀는 야심적인 여성이었으며 가난한 남자와 결합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은유를 사용해서 자문한다.
‘그는 내 아파트를 빌렸는데 집세를 지불할 수 없다. 그런 임차인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그는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혼 남성은 그녀의 임차인이 아니었으며 그런 동일화는 올바른 게 아니다.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남편을 집세를 지불하지 못하는 임차인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확실하게 자기의 인생 방식을 따르기 위해, 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는 일을 피하고 일부만을 선택해 내었다.
동시에 그녀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를 마치 ‘한 남자가 나의 아파트를 빌린다. 그가 집세를 지불할 수 없다면 그는 쫓겨나야만 한다’는 은유에 의해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일처럼 축소시켜 버렸다.
개인심리학적 치료의 목적은 사람들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처할 때 개인의 용기를 증대시키려는 데 있다. 따라서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꿈이 변화하고 자신 있는 태도가 현저하게 드러나게 된다.

어떤 우울증 환자가 치료를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은 다음과 같았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나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로 갔기 때문에 다행히 거기에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남편이 신문 광고란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환자는 자신의 꿈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꿈은 남편과 화해하고 싶다는 감정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처음에 그녀는 안락한 가정생활을 구축하는 데 실패한 남편의 무력함과 연약함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꾼 꿈의 의미는 ‘혼자서 난관에 부딪치기보다는 남편의 곁에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었다. 그 꿈에서 그녀가 남편과 자신을 화해시킨 방법은 두 사람을 염려해 주는 주위 사람들이 할 법한 충고와 비슷하다.
한편 그 꿈에는 혼자 있을 때의 위험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용기와 독립과 협동을 드러내고 시행하는 일에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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