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 목표를 달성하려는 원망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치료는 증후 그 자체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이런 태도에 대해 개인심리학은, 의학의 영역은 물론 교육의 영역에서도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다. 아이의 수학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그 밖에 성적이 나쁜 경우 등에, 주의를 오로지 그러한 특징 자체에 집중하여 그 상대를 향상시키려 한다면 전혀 무익한 일이다. 아이는 자기 선생님에게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향해서 우리는 “당신이 만일 우월해지고자 한다면 이런저런 노력을 하면 이룰 수 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우월을 위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계속되는 것이다.
자기의 목표를 위한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서 ‘이 일이 안 된다면 다른 어떤 일도 안 될 거야’라고 느끼는 사람은 신경증 환자뿐이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어떤 특정한 방향에서 방해되고 있다고 느끼면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해 내게 마련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특정한 우월감을 추구하는 노력을 안이하게 공식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목표들 가운데 하나의 공통 인자인 신과 같이 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는 있다. 때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자기를 지극히 노골적으로 표현하여 “신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기도 한다.
많은 철학자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신과 같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훈련시키려는 교육자도 있었다. 옛날에 행해지던 종교적인 수련에서도 이와 같은 목표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신처럼 되기 위해서 자기 수련을 해야만 했다.
신과 같이 된다는 이 이상은 ‘초월자’라는 생각에 있어서 더욱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나타난다. 니체가 신경증적이 되었을 때 스트린드베리의 편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라고 한 표현에서 사태의 본질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다.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자주 그들의 우월 목표를 확실하게 나타낸다. 그들은 “나는 나폴레옹이다”라든가 “나는 중국의 황제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싶어 하고, 만인에게 우러러보이고 싶어 하며, 전 세계와 무선으로 연락하여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싶어 한다. 또 그들은 미래를 예고하기도 하며, 초자연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는—아마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써—모든 일을 알고 우주적인 지혜를 소유하고 싶은 원망 혹은 생명을 영원히 갖고 싶다는 소원 속에 나타난다.
지상의 생명을 영원한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삶이 윤회한다는 상상, 내세에서의 불사를 예견하는 등의 기대들은 모두 신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에 있어서는 불멸의 존재, 즉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남는 존재는 신이다.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견은 인생의 몇 가지 해석과 의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신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 관련되어 있다. 무신론자들조차도 신을 정복하려 하며 신보다 높은 존재이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 욕망이 독특하게 강한 우월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월 목표가 한번 구체적이 되면, 인생 방식에 있어서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없어진다. 개인의 습관이나 모든 징후는 그의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올바를 뿐이며, 그것들은 모든 비판을 초월한다.
모든 문제아와 신경증 환자,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성도착자는 자기가 우월한 입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거기에 적합한 행동을 한다. 그의 모든 징후 자체를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징후는 마치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듯이 보인다.
어떤 학급에서 가장 열등생인 소년이 선생님으로부터 “왜 네 성적은 이렇게 형편없는 거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반에서 가장 게으르다면 선생님은 항상 제 일로 힘에 겨우실 거예요. 하지만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주의를 안 기울이세요.”
자기에게 주의를 끌게 하여 선생님을 지배하려는 게 그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에 관한 한 소년은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의 게으름을 없애 버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는 자기의 목표를 위해 그런 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그러한 행동은 완전히 옳다. 만약 그가 자기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면 그가 자신의 행동이 바보 같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이다.
집안에서는 너무도 순종적이어서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집에서는 전혀 활기가 없었으며 학교에서도 소외되어 있었다. 반면 두 살 위인 형은 인생 방식에 있어서 그와 완전히 달랐다. 형은 머리가 좋고 활동적이었으며 간혹 뻔뻔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어느 날 동생이 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처럼 뻔뻔스러워지기보다는 나처럼 바보스러운 편이 좋아요.”
만약 그의 목표가 분쟁을 피하는 것이라면 그의 바보스러움은 실제로는 매우 지성적인 행동이다. 그가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뭔가가 요구되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잘못을 저질러도 그 일로 비난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에서 본다면 바보가 아닌 게 바로 바보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치료는 증후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에 대해 개인심리학은, 의학의 영역은 물론 교육의 영역에서도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다.
아이의 수학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그 밖에 성적이 나쁜 경우 등에는 주의를 오로지 그러한 특징 자체에 집중하여 그 상대를 향상시키려고 해서는 전혀 무익한 일이다.
아마 그는 자기 선생님에게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퇴학을 당함으로써 아예 학교라는 곳으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를 한쪽 측면에서만 논해 본다면 그는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성인인 신경증 환자의 경우와 같다.
가령 편두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러한 두통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며 언제든 그가 필요로 할 때마다 두통 증세가 일어난다. 두통 덕분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통은 언제나 그가 처음으로 사람과 만난다거나 새로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일어난다. 동시에 그런 두통은 그의 사무실 직원 혹은 아내와 가족을 지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떻게 그가 인생의 시험을 치러내는 이토록 훌륭한 방법을 멈추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매우 의미 있는 이 고통은 현명한 투자임에 틀림없다. 그 증상은 그에게 자기가 원하는 모든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에게 충격적인 설명으로 위협함으로써 그를 이런 증후에서 빼내려 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 일은 마치 전쟁신경증 환자를 가끔씩 전기충격이나 외관 수술로 위협해서 증후를 없애려는 방법과 같은 맥락이다. 의학적인 처치로 그의 두통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자신이 선택한 두통이라는 특정 증후를 고집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목표에 변함이 없는 한 그가 두통이라는 증세를 버린다고 해도 그 대신에 또 다른 증후를 찾아낼 것임에 틀림없다. 편두통이 낫는다고 해도 불면증이라든가 뭔가 새로운 증후를 습관적으로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목표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한 그러한 증후를 계속 추구해 나가게 되어 있다.
놀랄 정도로 빨리 자신의 증후를 포기하고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증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신경증 환자도 많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레퍼토리를 넓혀 가면서 신경증에 관한 도사가 된다. 이들에게 심리요법에 관한 서적을 읽게 하는 방법은 그들이 아직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다른 신경상의 장애를 그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할 뿐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탐구해야 하는 바는 일정한 증후를 나타나게 만들었던 목적에 대해서이며, 우월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목적과의 결합에 대해서이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사다리를 갖고 오게 한 뒤, 내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칠판의 맨 꼭대기에 버티고 앉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나를 보면 누구나 ‘아들러 박사는 완전히 돌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어째서 내가 사다리를 타고 거기에 올라갔는지, 왜 그런 이상한 장소에 앉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그는 아마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면 자기가 열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칠판 위에 앉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만 안심할 수 있기 것이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나를 그 정도로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나는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멋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 사다리는 쉽게 납득이 가는 방법으로 생각되어지며, 그것을 타고 올라가려는 나의 노력이 잘 계획되어 훌륭하게 실행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면에서만은 미치광이처럼 받아들여지게 될지도 모른다. 즉, 우월에 관한 해석의 문제이다. 만약 내가 나의 구체적인 목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사실을 납득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 행동도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목표가 그대로인 경우 나의 사다리가 치워진다면 이번에는 의자를 갖다 놓을지도 모른다. 만약 의자도 치워진다면 나는 뛰어오르기라도 하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모든 신경증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방법의 선택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라도 잘못된 것은 없다. 방법은 비판의 영역 바깥의 문제이다. 우리가 고치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 그의 구체적인 목표이다.
목표가 변화되면 정신적인 습관이나 태도도 변하게 되어 있다. 결국 옛날의 습관이나 태도는 불필요하게 되고, 그의 새로운 목표에 적합한 새로운 것이 과거의 행동을 대신하게 된다.
친구를 사귀는 게 불안하고 어려워 그 때문에 힘들어하던 30세가량의 여성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녀는 직업 문제에서 발전할 수가 없었으며 가족에게는 무거운 짐이 된 상태였다.
그녀는 한때 비서라는 직업에 종사한 일이 있었는데, 사장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몹시 위협했기 때문에 사무실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새로 취직한 곳은 반대로 사장이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이번에는 매우 모욕당했다고 느끼면서 그만둬 버렸다.
그녀는 수년 동안이나 심리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그 치료는 그녀를 사교적으로 만들지도 못했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하도록 돕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를 진찰하면서 그녀의 인생 방식을 알아내기 위해 꽤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아이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른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는 막내딸로서 매우 귀여운 아이였으며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응석받이로 자라났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매우 부유했기에 그녀의 소원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 실행되곤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당신은 공주처럼 자랐군요"라고 말하니 그녀는 "이상해요, 모두가 나를 공주님이라고 불렀어요." 하고 대답했다.
내가 그녀에게 가장 최초의 추억에 대해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살 때 집 밖에 나가서 어떤 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들을 보았던 순간을 기억해요. 그들은 뛰어다니면서 '마녀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르곤 했어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와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에게 정말 마녀가 있느냐고 물어보았어요. 할머니는 '있고 말고요, 마녀나 강도나 도둑이 있어서 그들은 모두 아가씨를 쫓아온답니다' 하고 말했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그녀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인생 방식 전체에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집을 나올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지켜 주어야 하고 모든 면에서 그녀를 돌보아 줘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유아기의 기억도 있었다.
"저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피아노를 치다가 멈추고 나와서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이후로 다시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에서 그녀가 남자와의 사이에 커다란 거리를 두도록 훈련되어 왔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성적 발달은 사랑에 대해서 자기를 보호한다는 목표와 일치했다. 그녀는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약점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실제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신이 약해진다고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옳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우리 자신은 매우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랑은 상호 의존의 관계인데 '나는 결코 약해지지 않으며 결코 벌거숭이가 되지는 않는다.'는 우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은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태도를 보이며, 사랑에 대해 잘못된 자세를 갖고 있다. 자주 보이는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듯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우습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들은 불안한 감정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조소하기도 하며, 농담을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들은 자신의 약한 감정을 제거해 버리려고 한다.
이 여성 또한 사랑과 결혼을 생각했을 때 자기가 약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이 직장에서 그녀와 가까이하려 한 순간 필요 이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도피하는 일 이외에 어떤 다른 방법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는 동안에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그녀의 '궁전'은 거의 황폐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친척들이 와서 그녀를 보살펴 주었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전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친척들은 그녀에게 지치게 되었고 그녀에게 주의를 쏟는 일을 그만 두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화를 내며 자기가 혼자 있게 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녀는 자기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혼자가 되는 비극에서 면할 수 있었다. 만약 친척들이 그녀와 관련된 일을 완전히 포기했다면 그녀는 자기가 미쳐 버렸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월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족을 강요해서 자신을 지탱하고 자기 인생의 모든 문제를 차질 없이 끝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나는 이 혹성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혹성의 사람이다. 그곳에서 나는 공주이다. 이 빈약한 지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갔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얼마간 자기 소유의 재산을 갖고 있었고 자기를 돌봐 줄 친척들을 아직 발견할 수 있었던 탓으로 최악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